[이부시마]藍(미완)

MIU404 2025. 4. 20. 23:04

あい [藍] 명사

1. 식물 쪽.

2. 남빛.

 

 

 

 

 

 이부키 아이는 생각과 행동의 거리가 없다시피 한 인간이었다. 체대 시절에는 아직 새파랗게 어린 주제에 꼰대질하는 선배들에게 여지없이 말대꾸했다가 많이 얻어맞았고 육상 국가대표로 발탁된 후로도 코치와 감독에게 "발만 빠른 망나니"란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모두의 눈엣가시 같은 이부키였지만 달리기 실력에 있어선 발군이었기 때문에 그는 안정적으로 국가대표로 뽑혔다. 국가대표 선수촌에선 온갖 일이 벌어졌다. 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사랑촌에 가까웠다. 번갈아 가며 사귀고 흘레붙고 헤어지는 선수들 사이에서 이부키는 홀로 연습에만 몰두했다. 그는 피지컬이 좋고 입버릇처럼 「꺄르르 우후후」하고 싶다고 말했기에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부키는 대놓고 팔뚝을 쓰다듬는 손길이나 술자리에서 실수인 척 허벅지에 안착하는 손길을 응? 조심해야지~ 하며 모두 물리쳤다. 그의 신조는 '러브가 없으면 하지 않아!' 였다. 아무리 미모가 빼어나고 몸이 좋은 여자선수라도 처음 본 사이에 러브가 발동하지 않았고 그를 아는 육상부 선수들은 그를 기피했다.

 

 

 그랬던 이부키 아이가 치정극에 휘말려서 폭력을 쓰는 바람에 국가대표 선수단에서 퇴출을 당했다는 건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나설 만큼 친분 있는 사람이 없던 이부키는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선수촌에서 짐을 싸고 나왔다. 

 

 

 어디로 갈까, 커다랗고 투박한 검은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에 서서 고민하던 이부키는 터미널 내부를 둘러보다가 운명처럼 그 책자를 발견했다. 넓게 펼쳐진 해안도로, 푸른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는 책자를 덥석 집어 들고 터미널 매표소로 달려갔다. 여기! 여기로 가는 표 주세요!

 

 

 주니어 때부터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면서 받은 메달과 상금이 적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이부키는 그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전부 모았다. 그래서 그의 통장에는 바닷가 근처에 덩그러니 서 있는 오래된 상점을 사고도 남을 정도의 돈이 모여있었다. 그는 그곳에 짐을 풀었다. 처음부터 가게를 열려고 마음먹고 떠난 여행길을 아니었다. 하지만 해변에 늘어선 외관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카페나 식당을 지나치다가 발견한 낡은 외관의 빈집을 어쩐지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는 지금도 생각과 행동의 거리가 가까웠고, 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임대문의] 아래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회색에 가까운 파란 지붕과 한때는 하얀색이었을 지저분한 외벽. 그는 그곳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삼기로 했다.

 

 

 정리정돈의 아이쨩, 인테리어의 아이쨩. 형편이 좋지 않아 항상 맞벌이했던 부모님 아래서 자란 이부키에게 청소, 빨래, 요리 등등 집안일은 달리기만큼이나 쉬웠다. 종일 빈 상점을 쓸고 닦고 청소한 다음 간단한 음식을 해 먹으면서 그는 가게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지붕에 앉은 먼지를 씻고 햇빛에 말린 다음 진한 쪽빛을 입히면서도, 외벽에 하얀 칠을 하고 바다를 향해 난 창문의 유리를 갈아 끼우고 창틀을 다람쥐 색으로 칠하면서도 그는 내내 가게 이름을 생각했다. 내부는 따스한 원목 테이블과 의자로 채우고 벽에는 그가 좋아하는 선수, 락 페스티벌, 풍경 등등 일관성 없는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 장식했다. 작정하고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었다면 조금 다른 인테리어를 떠올렸겠지만, 그는 이곳이 자신의, 이부키 아이의 집임을 표시하고 싶었다.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던 한 남자가 마침내 걸음을 멈춘 곳.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할 곳. 아, 그때 그는 이름을 정했다.

 

 

 가게 이름은 「藍」. 그보다 더 적당한 이름이 없었다.

 

 

 처음에는 간판도 걸지 않고 시작했다. 굴러다니는 A4용지에 커다랗게 이름을 써넣고 아래에 [영업중! 매일 11:00~21:00 ^0^] 귀엽게 그려놓은 이모티콘까지 그의 수제였다. 그래서 글자는 엉망진창 비뚤비뚤 날아갔지만, 그는 자랑스럽게 첫 간판을 붙이고 장사를 개시했다. 그의 주력상품은 일본 가정식이었다. 관광지에서 약간 동떨어진 해안가에 가정식이라니, 차라리 카페를 했다면 알음알음 블로그나 SNS 후기를 타고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신 있게 가정식을 판매했다. 메뉴는 한가지였다. 「오늘의 아이쨩 식단」 바로 자신이 먹은 음식이었다. 어느 날은 고등어구이에 미소된장국이라면 어느 날은 텐동을 팔았고 야채가 많이 들어간 우동을 팔기도 했다. 어떻게 알아봤는지 드문드문 손님이 찾아왔다. 실력이 좋다는 칭찬도 받았다. 누군가 메모지에 '사장님이 미남이에요! 잘 먹었습니다!'라고 써서 벽에 붙이고 간 후로 한쪽 벽에 메모지가 점점 늘어났다.

 

 

 그는 아침마다 해안도로를 달렸다. 쭉 뻗은 도로 옆으로 깔린 도보가 그의 러닝 코스였다. 편도로 5KM, 왕복 10KM를 뛰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했다. 높이가 낮은 안전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보는 모래사장과 이어졌다. 철썩-철썩- 귓가를 간지럽히는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서 힘껏 달리고 나서야 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달리기는 그의 인생이었고, 선수 자격을 박탈한다 해서 그에게서 달리기를 빼앗아 갈 순 없었다.

 

 

 그 사람을 발견한 날에도 그는 달리는 중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러닝화를 신고 가벼운 복장으로 집을 나선 시각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오전 7시 40분. 몸을 길게 쭉 늘여서 스트레칭하고 달리려던 이부키의 시야에 그 사람이 잡혔다. 모래사장 위에 위태로이 서서 수면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 이부키는 어쩐지 그 외로워 보이는 등에서 눈을 떼기 어려워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신을 다잡고 지면을 박찼고 편도 5킬로를 달린 다음 터닝포인트를 돌았다.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였다. 그는 왠지 모르게 조급하게 달렸고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레, 낮게 설치된 안전바를 뛰어넘어 모래사장을 향해 내달렸다.

 

 

 아까 보았던 남자의 몸통이 절반 정도 바닷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시마 카즈미는 가수이자 배우다. 스무 살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를 했고 솔직하고 꾸밈없는 소년다운 보이스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인기 있는 가수들이 으레 그러하듯 드라마와 영화에 카메오 및 조연으로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값은 점점 올라갔다. 소속사는 사람들이 그의 천연스러움과 해맑음을 사랑하는 걸 알고서 그 점을 셀링포인트로 잡았다. 시마 카즈미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밝게 빛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이미지 메이킹했다.

 

 

 시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스크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진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스크린 속 마냥 착하고 다정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인에게 무심하고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드러낼 수 없었다. 보는 눈이 많은 촬영장에서 착한 사람을 연기해야 했던 그는 촬영을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입을 꾹 다물고 차창에 이마를 붙인 채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늘어났다. 매니저는 그의 본래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차를 끌어야 했다. 어쩌다가 과속방지턱에 차가 덜컹거리기라도 하면 예외 없이 쏘아붙이는 시선이 백미러 너머로 매니저를 찔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혼자가 되면 후회했다. 매니저 형의 잘못이 아닌데. 굳이 따지자면 바보같이 소속사의 말에 끌려다니는 자신의 잘못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내보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때까지만 해도 그 결정이 이토록 제 숨통을 조일 줄은 몰랐다.

 바다는 싫어하지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가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훌쩍 잠적해서 회사를 발칵 뒤집은 전적이 있었건만 꼭 바다가 보고 싶어서 떠난 건 아니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어디론가 향한다면 종착지는 반드시 바다였다. 그랬던 그가, 언젠가 죽는다면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드라마 촬영장에서 그는 인질 역할이 맡았고 손과 발이 묶인 채로 바다에 던져졌다. 보통 이런 촬영은 충분한 안전장치를 두고 촬영하지만, 정신 나간 감독은 리얼리티를 살려야 한다며 그를 진짜로 바다에 빠트렸다. 풍덩.

 

 

 첨벙!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를 감쌌다. 떠밀리는 순간 있는 힘껏 숨을 참았기 때문에 그는 볼썽사납게 입과 코로 물을 들이켜지는 않았다. 그는 서서히 눈을 떴고 수면 위로 부서지는 물결무늬의 햇살 조각을 바라보며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반짝임을 발견했다. 수면에 가까운 해저까지 스며든 햇살이 자신을 감싸 안을 때 그는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고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컷 사인과 동시에 그를 건져 올리는 스태프의 다급한 손길, 참았던 숨과 함께 터지는 기침, 별거 아니었지? 라는 무감각한 감독의 목소리...

 그날 이후로 그는 종종 멍하니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드라마 촬영 중에도, 인터뷰 중에도, 녹음 중에도. 데뷔 6년 차나 되었으니 이미지 변신이 필요하던 시기였고 평소의 활기차고 발랄하던 모습과 달리 어딘지 헐렁해 보이는 모습은 오히려 팬들을 자극했다. 에...,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면서 웃는 시마와 시마상, 어딜 보는 거야? 집중하라고! 타박하며 까르르 웃는 패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아래로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나사 빠진 시마쨩, 하지만 귀여워-!', '이미지 체인지? 나쁘지 않을지도~'

 

 또는 '저번에 물에 빠진 뒤로 뭔가 달라지지 않았어? 시마쨩 나른한 느낌도 좋지만..., 괜찮은거야?' 걱정하는 댓글과

 

 '연차 쌓였다고 태도 바뀌네, 예전부터 좀 쎄하다 했어ㅋㅋ' 류의 악플.

 

 시마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6년 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었으면 슬슬 날 자유롭게 풀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 소속사에 불려가서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나온 뒤 그는 지하주차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매니저에게 남길 문자를 적었다.

 

 

 [조금만 쉴게요. 찾지 마세요.]

 

 그대로 보내려던 시마는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멋대로라서 죄송합니다.]

 

 

 제일 빨리 출발하는 버스로 주세요. 이왕이면 바닷가로 부탁드립니다. 종종 깊은 사연을 가지고 터미널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매표원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표 한 장을 끊어줬다. 시마에게 다행이었다면 그 매표원은 인터넷이나 TV,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시마를 태운 버스가 떠나고 한참 뒤에 헐레벌떡 터미널로 뛰어온 매니저는 '시마 카즈미를 보았냐'고 물었을 때 매표원이 고개를 저었다는 점이다. 매표원이 표 사는 사람의 이름까지 외울 이유는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쓴 사람을 보았냐고 물어봤다면 답변이 조금 달랐을 수도 있다.

 

 

 버스는 밤늦게 도착했다. 시마는 터미널 근처 여관에 하루 묵었다.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하며 뒤척이다가 선잠을 잤고 눈을 떴을 때는 새벽 6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 나가면 일출을 볼 수 있겠네,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시마는 일어났다. 붕 뜬 곱슬머리를 대충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그는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해가 뜨지 않은 해안가는 깊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해안도로를 걸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터벅터벅 걷다가 모래사장이 나와서 방향을 틀었다. 어느새 신발 안으로 들어온 잔모래가 튀어 올랐다. 하늘이 차츰 밝아지는 걸 느끼고 그는 수면을 마주 보고 섰다. 지평선 끄트머리에서 오렌지색 태양의 이마가 쑥 튀어나왔다. 반지처럼 지평선이 물들었다. 한껏 웅크렸던 태양이 기지개를 쭉 켜고 몸을 일으켰다. 반원이 되었다가 완전한 원형이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길지 않았다. 시마는 태양이 떠오르고도 한참을 더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밀려드는 감정의 정체는 외로움이었다. 하, 시마는 바람 빠지듯 웃었다. 이런 감상이나 떨려고 도망친 건 아니었는데 당장 지금 그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건 가슴 아픈 팩트였다. 6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게 좋았던 스무 살의 어린 청년이 도쿄돔을 가득 채우는 인기 가수가 되도록 해준 시간이었다. 서투르던 연기가 제법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던 차였다. 6년 동안 강요받은 성격으로 살다 보니 시마는 자신이 진짜로 밝고 상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끝내 탄성을 잃고 늘어진 것처럼 그는 고장 났다. 이때까지 어떤 모습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실수가 잦아졌고 헐렁한 시마 카즈미가 되었다. 그는 너무 지쳤다. 돌아가기 싫었다. 다시 거짓말을 할 자신감이 사라졌다. 죽을 생각은 없었다. 죽는다면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는 거였지, 죽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조금만 쉬다가 돌아가겠다고 말할 땐 진심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했다. 한 반 정도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건 다소 충동적이었다. 진짜로 바다에 몸을 던질 생각이 아니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종아리를 적시고 허벅지까지 차올랐다가 허리를 잡아 삼킬 정도로만. 딱 그 정도만 들어갔다가 나올 심산이었다. 막상 허리께를 적시는 바닷물을 느끼고 나니 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며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르도록 내버려 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당신 미쳤어? 죽을 셈이야?!"

 

 

 그를 물에서 끄집어내는 거친 손길, 땀에 흠뻑 젖은 얼굴과 한껏 화난 목소리로 윽박지르는 낯선 남자의 말에 그는 놀라는 와중에도 억울함을 느꼈다. 우습게도. 

 

 

 

 

 

*미완, 완결 예정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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